남산 중턱에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는 번쩍! 꽈광!! 섬광과 굉음이 동시에 울린다. 아주 가까운 곳, 동네 어디쯤에 낙뢰가 있는 경우가 많은 거다.
어쩌다 잠이 깨어 섬광과 굉음을 꼬박 보고 들어야 하는 새벽에는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다시 잠을 이루기가 만만찮은 실정이다.
어제 새벽.. 기분 나쁜 열기의 끈적거림 때문에 늦도록 잠 못이루고 있다가 비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다소 시원한 밤이 되겠구나...생각하다가 베란다 창문을 모두 열어 놓은게 생각나 비가 들이치면 대박이가 편한 잠을 못 이루실수도 있겠다..싶어 창문을 닫아 주려고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번쩍! 과 꽈광!! 그리고 후다닥!!!이 동시에 이루어 졌다. 본능적인 움츠림이 있었고 잠시후 정신을 추스려 창문을 닫고 돌아서다가 번쩍과 꽈광은 알겠는데 후다닥은 도대체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후다닥]은 뭐였을까? 소리만 들리고 현상은 목격 못했으니 밖에 도둑 고양이라도 있다가 낙뢰에 놀라 달아나는 소리였나보다..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다시 번쩍! 하는 섬광이 보였다. 지난번 낙뢰에 컴퓨터와 티비를 모조리 수리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라 컴퓨터 전원을 끄고 책을 한권 뽑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에 한 두어줄쯤 읽었을까? 방안에 나 외의 다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제 멋대로 일어서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30초 정도 움직임을 멈추고 온 정신을 집중해 도대체 뭔가..를 파악하는데 갑자기 방안에서 숨소리가 커지더니 아주 부드러운 뭔가가 내 발가락을 스치는 것이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순간이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가락을 건드렸던 웬 시커먼 물체(?)가 얼굴쪽으로 달려 들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내 얼굴을 덮쳤던 그 물체는 나보다 더 깜짝놀라 방안을 뱅 돌더니 침대 한쪽 귀퉁이로 뛰어 들어갔다.
대박이... 대박이 선생께서 아까 그 정체모를 [후다닥]의 주인공 이셨다. 초복과 중복을 심한 다이어트 작전을 통해 무사히 넘기신 대박이 선생께서 천둥 번개만 치면 사색이 되시는지라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전전긍긍 하시던 차에 내가 문을 열었고 그 와 동시에 번쩍과 꽈광이 한꺼번에 몰려 오니까 염치불구 불문곡직 다짜고짜 이판사판 허겁지겁 어마지두에 집 안으로 뛰어들어 내 침대 밑 한 귀퉁이로 다이빙을 했던 거 였는데 많이 보던 발가락이 눈앞에 보이니까 친근감을 표시했고, 급기야는 반갑다고 얼굴로 뛰어든 거였다.
서로 놀래고, 서로 한심했던 대박이와 나는 밤 새도록 [사람과 개는 유별하니 당장 나가라!] [같은 동물끼리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못 나가겠다!] 를 주장하며 꼬박 밤을 새울수 밖에 없었다.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위협도 하고, 파리채를 집어들어 겁도 주고 하다가 닭 가슴살 포 두어개로 타협하여 내 보냈지만 걱정이다.
이제 나이 더 들면 군대도 가야하고 장가도 가야 할텐데 겁이 저리 많아 그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나...
아무래도 인터넷을 뒤져 저렴한 집이라도 한채 구입해 베란다에 들여놔 줘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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