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숨어있기 좋은 방

[스크랩] 전화번호를 바꾼다는 것은...

가람비 2008. 1. 18. 00:34
전화번호를 바꾼다는 것은
살고있는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 이기도 한 것같다.

017-432-****, 019-307-****, 010-7770-****...
삐삐번호 015-???-7286까지 포함하면 세번째 바꾸는 것이 되는데...

300여명 기록돼 있던 전화번호를 새 전화기로 옮기면서
설렁설렁 살아온 삶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연관이 돼 있었는지 새삼 놀랬다

한명 한명 내 전화번호부에 기록되게 된 사연을 상기하면서
옮겨야 할지 지워야 할지..고민하는 마당에서는 자못 살생부를 작성하는듯한 비장함도 느끼면서..
남기고, 지우는 과정속에서 살아온 삶의 한 자락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는 느낌을 갖는다.

내가 번호를 남기지 않은 사람들은
바뀐 내 번호를 알 도리가 없을테니
복잡한 세상살이에 새삼스레 내 번호를 수소문해 나를 찾지는 않을테고
나 또한 기왕에 없앤 번호를 다시 들춰 찾아내 연락해야 할 필요를 덜 느낄테니
그냥 이쯤에서 인연의 고리가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고
군대를 가고 전역을 하고
취업을 하고 퇴직을 하고...
이사를 하고, 또 이사를 하고...
그러는 과정들이 모두 사람을 알고 헤어지는 일상임은 알았었는데
그냥 단순하게 전화번호 하나를 바꾸는 그 무심한 작업이
사실은 가장 적극적으로 인연을 끊는 작업임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작업임을
새삼스레 느낀다.

몇몇 아픈, 그러나 놓지 못했던 기억들과
잊자고 마음 먹기엔 아직도 가슴 한켠이 우릿하게 아파오는
이름 몇몇을 기억 저편으로 놓아 보내면서

전화번호 하나를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결코 단순한 작업만이 아닌,
서 있는 세상에서 그 영역을 바꾸는 작업임을 느낀다.
출처 : 아미산 머루 다래 스무다섯 알갱이.
글쓴이 : 정성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