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숨어있기 좋은 방

[스크랩] 어머니..저를 보십시요.

가람비 2008. 1. 17. 15:12

구한말의 경허 대선사는 1849년에 나서 1912년에 입적한 우리나라 禪家의가장 마지막 맥을 잇고 있는 유명한 화상이다.

살아 생전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無碍行으로 숱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데,
그는 출가하면 부모나 가족을 버리는 다른 수도자와는 달리 어머니를 자신의 거처 가까운 곳에 모시고 수행을 했었다.

그가 충청남도 서산 천장사에서 보임생활을 하고 있을때였다.(보임생활 : 돈오점수 사상에서 유효한 용어, 일단 도를 깨치고 난후 그 경지를 유지하거나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칩거하여 수행하는 일. 돈오돈수 사상에서는 일단 도를 깨치고 나면 그것으로 그만이기 때문에 보임 생활은 필요치 않다고 하며, 따라서 돈오점수 사상에 의한 깨침은 진정한 깨침이 아니라 함. 돈오돈수를 주창한 가장 대표적인 스님이 성철스님임.)
하루는 경허 스님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하여 법문을 한다고 온 대중을 모아 들일것을 내외에 전하였다.

유명한 고승의 법회라 수많은 대중들이 모여들었고, 경허스님은 시자에게 어머니를 모셔 올것을 분부하였다.

대중들이 큰방을 가득 채우고, 어머니를 법석에 모신 후, 경허스님은 묵묵히 앉아 있다가
어머니를 위한 법문을 시작한다고 말하면서 벌떡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완전히 나신이 된후 어머니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머니 저를 보십시요"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무슨 심오한 내용의 법문을 해 줄줄 알고 기대하였다가
이 해괴한 짓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소리치면서 말하였다.
"도대체 무슨 법문이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법석을 박차고 나가 자기 방으로 가서 굳게 문을 닫아 버렸다.

아연한 회중들에게 경허 스님은 크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래 가지고 어찌 남의 어머니 노릇을 할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 몸을 발가벗기고 씻기고 안고 빨고 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그리 못할 것인가. 아들인 내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기상천외의 이 해탈법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다만 짐작할수 있는 것은 어머니나 경허 스님의 모자 관계는 변한것이 없는데, 경허 스님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아들인 경허 스님은 여전히 어머니라 생각해 벌거벗었는데,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아들이라 생각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아들이라 부르고 있던 것은 그저 하나의 혈연일뿐, 마음속으로는 아들을 다른 하나의 남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허구를 경허 스님은 수많은 대중들이 모인 법당 안에서 스스로 벌거벗음으로써 충격을 가해 우리의 낡은 인식의 허물을 벗기려 하였던 것이다.

경허 스님은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기 원함이었으리라...
"얘야 여기가 어디라고 발가벗느냐. 감기 들겠다. 어서 옷 입어라."


사족 : 모든 인연의 고리는 마음으로 짓는 것인데, 간혹 입으로 표현하는 용어의 한정에 걸려 마음을 그것에 꿰 맞추려 하는 것을 사람 관계에서 자주 볼수 있다. 친구를 친구라 하는 것은 입에서 결정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

최인호의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에서 발췌...
출처 : 아미산 머루 다래 스무다섯 알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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