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숨어있기 좋은 방

[스크랩] 백일간의 기다림.

가람비 2008. 1. 17. 15:20

한 남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남자는 상심하여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겠습니까 ?"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쌀쌀맞게 대답했습니다.

"백일 동안 매일 밤 내 창가에 와서 나를 지켜본다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어요."

남자는 그날 저녁부터 의자를 들고 와 그녀의 창문이 바라보이는 곳에 앉았습니다.

별이 떠오르고 밤이슬이 내리고 아침이 되자 남자는 지친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갔습니다.

때로는 비가 내리는 밤이 있었고,

때로는 바람이 부는 밤도 있었고,

때로는 살을 에는 듯 추위가 엄습해오는 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밤에는 여자의 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어느 밤엔 일찍 불이 꺼지고,

어느 밤엔 새벽이 될 때까지 무도회가 열린적도 있었습니다.

때로 여자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다 무심코 커튼을 젖히고 내려다본 창밖에는 항상 남자가 있었습니다.

때로 깊은 밤 어지러운 꿈에 쫓겨 잠이 깼을 때도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저러다 곧 그만둘 것이라고…

한 달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두 달이 지나자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당장 달려나가 남자의 지친 어깨를 감싸주어야 한다고…

석 달이 지나자 여자는 다짐했습니다.

남자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겠노라고…

아흔아홉번째 밤이 깊었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의 창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었고, 백번째 밤이 찾아왔습니다.

여자는 설레는 가슴으로 창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남자는 없었고, 빈 의자만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
......

남자는 사랑한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사랑은 바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겁니다.
출처 : 아미산 머루 다래 스무다섯 알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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