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시간 흐르는대로...

어울려 산다는 것...

가람비 2010. 1. 4. 01:41

 

 

 

 

 

아직

애벌레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흰 강아지는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

 

현관 입구와 냉장고 앞, 내방 침대 구석자리에 응가를 하시고

구석진 쇼파 아래, 컴퓨터 책상 아래, 돗자리, 화장실 입구에 쉬야를 하신다.

쉬야는 워낙 작은 양이라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들도 꽤 있으리라.

교정도 쉽지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화장실에 들여놓은 대박이의 옛집에서 생활하신다.

화장실 문을 삐꼼 열어 두면 가끔 꼬물거리며 거실 나들이를 시도하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다시 돌아가야 할지 앞으로 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대략 태어나신지 두어달...

개는 개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지만

이 엄동설한에 밖에 내 놓기에는 안된 마음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온전히 집안에 두자니 게으른 성격에 여기저기 살포될 용변을 감당하기 어렵다.

 

어울려 살아간다는게 이렇게 어렵다.

생명을 맞아 들인다는건 적적함을 달랜다든지, 내 취향이나 기호, 취미를 충족한다든지

어떠한 형태로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함인데

그 만족을 위해 치러야 하는 수고로움은 귀찮은 것이다.

 

먹이를 주는 것 외에

특별히 내 삶의 한 켠을 할애해야 할  번거로움이나 감정의 소모가 필요 없는 강아지임에도 이토록 불편함이 자리하니,

적극적으로 삶을 내어주고 간섭받고 감정을 섞어야 하는 사람 사이의 어울림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 들어가거나 간섭하는 걸 꺼려하는 편이다.

웬만해서는 친구의 집에서 하루밤 묵어야 하는 일 조차도 피하는 편이다.

어쩔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는 상대의 기본적인 틀 안에 최대한 나를 맞춰 넣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내 영역이나 내 집에도 쉽게 사람을 들이지 못한다.

들일 경우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가 내 놓을 수 있는 범위, 내가 부담스럽지 않을 범위까지만 허용하는 편이다.

한번 보고 말, 그래서 지속되지 않을 관계의 사람이라면 그다지 가리지 않지만

계속 두고 접촉이 있어야 할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꽤 까다로운 습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그것이 단순히 공간의 영역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더욱 심해지는 편이다.

 

아마도 살아오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이 그런 습성을 갖게 하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규율이 아주 엄격한 곳이었다.

한층에 방이 70여개씩 4층인 건물 두개가 기숙사였으며, 방 하나에 모두 4명씩 생활했었다.

그런 곳에서 [개인]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잘해도 다른 친구 때문에 단체로 체벌이 행해지던 곳.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질서를 배울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 의지나 내 행동이 내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낀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장교로 생활한 군대에서조차 단체기합이나 연대책임을 지워 본 기억이 없다.

대학교때는 자취를 했는데, 친구녀석 하나가 갈곳이 없다고 내 집으로 들어와 꽤 오랜기간 함께 살았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늘 술에 취해 밤늦게 드나드는 녀석은 귀찮고 성가실 때가 훨씬 많은 존재였다.

그 이후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최근 몇년을 제외하고는 늘 누군가가 내 영역에 들어와 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결혼하고 1년후부터 약 10여년동안 처가 식구들과 한집에서 살아야 했던 일

처가의 사촌들까지 학업 때문에, 직장 때문에 몇년씩 데리고 살아야 했던 일

처가 식구들이 미국으로 떠나고 난 후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회 후배가 갈 곳이 없다고 한달만 묵게 해 달라고 하여 다짐을 받고 들였다가

바람피다 걸려 떠안게 된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들어와 1년 가까운 세월을 유치원 보내고 때 맞춰 밥 챙겨 먹이고...

끝내는 이여자 저여자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꼴을 보다못해 어느 새벽, 침대에서 끌어내 죽지 않으리만큼 두들겨 패고 내 쫓던 일...

  

만약 운명이란게 있다면

나는 평생 누군가를 그렇게 데리고 뒤치닥꺼리 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보다...했었다.

그리고 대박이를 데리고 있으면서부터 대박이가 사람 대신이 된 셈이다.

 

이런 경험들이 아마도 내 영역에 다른 사람을 들여놓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리라.

어울려 살아가면서 어려운건 아마도 공간적인 문제보다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정신적인 문제일 것이다.

은연중 내 생각이나 내 습성을 다른이에게 요구하는 일,

배려가 부족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

다름을 틀림과 혼동하는 일...등

내가 끼치기도 싫고 당하기도 싫어 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어울어지기 보다는 혼자의 영역을 선호하고 유지하는 것일테다.

 

 

 

강아지를 한마리 더 키운다면 이번에는 암놈으로 키울까 했었다.

숫놈은 영역표시의 본능이 있으므로 실내에서 키우는게 어렵기 때문이다.

거세를 하면 그런 습성을 교정할 수 있다고는 하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것도 차마 못할 짓이다.

대박이가 혼자 사는것보다 강아지가 한마리 더 있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데리고 오신 앞집 아저씨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놓긴 했지만 그 녀석도 숫놈이다.

게다가 그 녀석은 대박이보다도 용변 가리는 것이 서투르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고, 녀석이 조금 더 자라면 이제 대박이처럼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나만의 영역을 일부 포기하면서 용변 가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간을 택할지

내 영역을 지키면서 용변 문제를 감수할 또 다른 존재를 택할지

그냥 저냥 정서적인 교감이나 소통 없이 이대로 화석이 되는 길을 택할지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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