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시간 흐르는대로...

[스크랩] 체 게바라의 詩

가람비 2008. 8. 6. 10:46

 

편지
- 어머니에게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아 애쓰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롭고 고독할 뿐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없으며
친구 역시
사상이 같을 때만 친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지금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명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예전부터 있어오기는 했지만
이제 저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런 생명의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적인 임무는
그 어떤 힘겨운 고통도 씻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머니,
지금 제가 왜 이런 편지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알레이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직시



멕시코 혁명은
죽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휴가


오늘 한 혁명동지가 나를 찾아와
고향의 가족을 만나러 가고 싶다고
1주일간만 휴가를 달라고 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말했다
"우린 이제 혁명에서 이겼지 않느냐?"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이긴 건 혁명이 아니라,
파쇼와의 전쟁이야.
혁명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야!"
"..."
사랑하는 가족의 품이 사무치도록
그립다는 걸 난들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
가족은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도
충분하지 않는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때때로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편지
- 부모님께



내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진실을 찾아 헤맸습니다
때로
헛된 고생도 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와중에서
나를 영원으로 이끄는
한 여자를 만나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죽음을
어떠한 경우에라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괴테 전기



내 중대에 간호병으로
새로 들어온 여성대원
하이디 산타마리아에게
괴테 전기를 빌려 읽었다
기억해 둘 만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해진다..."

 

 

 

 

 

고통


오늘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처음이었다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심장을 정확히
맞추려고 애썼다
적이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이지 않는 게 좋다

 

 

 

 

 

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희망


게릴라로 싸우는 동안에도 물론
심지어 지금까지도
카스트로의 이야기는
내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무기를 방기한 게릴라로서의
지불해야 할 대가는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적과 직접 부딪쳐 싸울 경우
살기 위해 의지해야 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무기뿐이다
그런데 그 무기를 버리다니!
그것은
처벌받아 마땅할 범죄이다

단 하나의 무기,
단 하나의 비밀,
단 하나의 진지도
적들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라틴 여행기를 쓰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전이
허공에서 돌고 돈다
때로는 앞면이 나왔고
때로는 뒷면이 나왔다

인간은 모든 것들의 기준이다
나는
내 입으로 말하고
내 눈으로 보았던 것을
내 자신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말한다
가능한 열 번의 앞면 중에서
나는
오직 한 번의 뒷면만 볼지도 모른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변명은 필요없다

내 입은 내 눈이 본대로 말한다
우리의 견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편향되거나 성급하지는 않은가?
우리의 결론이 너무 완고하지는 않은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죽어서
아르헨티나의 흙으로 돌아가리라
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한 사람으로서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닌 것이다!

 

 

 

 

 

편지
- 아버지에게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가
저를 부릅니다
레닌의 말들이
절절이 울려오는
쿠바의 그 풍광으로
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아버님,
저는 지금
아바나로 갑니다

 

 

 

 

 

쿠바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핀셋


혁명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혁명은
핀셋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핀셋을 요구할 때는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해산의 고통은
더 이상
잃을 것밖에 없는 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희망을 안겨다준다

역사는
망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다
폭력은
착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피착취자들 역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단지,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마르티는 이렇게 말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싸움을 하는 자는 범죄자이다
그런 자는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

 

 

 

 

 

 

바다


보름달이 바다에 그림자를 비추고
파도가 은빛으로 부서지며 철썩거렸다
우리는
바닷가의 모래 위에 앉아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며
서로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바다를 언제나 절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항상 가장 좋은 충고도 아끼지 않는
그런 친구 말이다

 

 

 

 

 

(포로로 붙잡힌 체 게바라)

 

질투
- 나의 연인 치치나에게


날마다 피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자
내 몸을 걱정하던
한 연약한 매춘부의 위로의 키스가
문득,
여행 떠나오기 이전의
내 잠자던 기억을 귀롭혔다

모기떼가 잠들지 못하게 하던 그 날 밤
비록,
이제는 아득한 꿈이 되어버린
치치나를 생각했다
끝나버린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즐거웠기에
씁쓸함보다는 달콤함으로 남아 있는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치치나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따뜻하고 잔잔한 키스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새로운 청혼자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삭이고 있을 그녀의 집으로 날아가
깊은 밤의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내 머리 위의 거대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들은 마치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녀


희미한 불빛 아래
신비로운 환영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그녀를 느낄 수 없다고
깨달은 이 순간까지도
그녀를 사랑했다고 믿었다
나는 그녀를 떠올리기 위해
그녀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싸워야 했고
그녀는 나의 것이었다
나의 것!
나의...

나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탐독



올바른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해적과 달'은
라스콜리니코프로 길을 열어주었다
엘리샤에서 네루다까지
그리고
열띤 토론은 또 다른 책을 탐닉케 했다
스테판 츠바이크,
보들레르와 세익스피어
엥겔스와 도스토예프스키
크로포트킨과 트로츠키
폴 발레리와 가르시아 로르까
그 외 많은 아나키스트들,
레온 펠리페의 '훈장'
레닌의 '유물변증법'
모택동의 '신중국론'
사르트르의 '벽'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수고'
네루다와 랭보
...

특히,
마야코프스키와
네루다의 시에 탐닉했다

 

 

 

 

 

 

말의 힘

나는 깨달았다
단 한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의 말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베일 속의 사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광채와
네 개의 하얀 앞니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민중들의 것입니다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세계의 모든 민중들의 권력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이 사회에 나처럼 아주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을 파괴시키는 이 사회에
당신 스스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사내의 말들이 밤새도록 내 가슴 깊이 울렸다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이 세계를 두 개로 나눈다면
난 기꺼이 민중들 편에 설 것임을,
그리하여
귀신에 홀린 듯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적진의 바리케이드와 참호를 공격할 것이고
분노를 내뿜으며 무기를 피로 물들일 것이고
내 손에 잡힌 그 어떤 적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껏 내 코를 팽창시켜, 유유히
매운 화약냄새와 낭자한 적들의 피 냄새를 음미하리라

그런 다음 또 다시 내 몸을 바짝 긴장시킨 채
다음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열광하는 민중들의 환호성이
또 다른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울려퍼질 수 있도록

 

 

 

 

 

 

나환자촌

칼차키에스 계곡
순수한 신앙이 깃든 하얀 교회
그리고 오래된 돌들이 풍기는 향기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으리라


더 있다
보아야 할 것이 더 있다
산중에 쓸쓸히 서 있는 오두막
계속되는 굶주림과 수탈
벼룩...
저주받은 것들
사방에 버려진 넝마주의 아이들
허망한 꿈에 젖은 눈동자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
영양결핍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
그리고 아메리카...


나환자들과 맹인들을 치료하며
나병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켰다
그들과 축구도 하고 산책도 했다
또 사냥도 떠나 짐승들을 잡아오기도 했다


우리가 나환자촌을 떠날 때
그들이 뗏목을 만들어주었다
그 뗏목에 '맘보 탱고'라고 이름 붙였다
또 송별 파티도 열어주었다
비가 내렸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기슭의 나환자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손을 흔드는 아마존 밀림 속의 맹인들...

 

 

 

 

 

 

여행

여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는
떠나는 순간이고


또 하나는
도착하는 순간이다


만일,
도착할 때를
계획한 시간과 일치시키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라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과테말라에서는
과테말라인처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인처럼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느껴졌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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