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방/시간 흐르는대로...

영흥도...추억 그리고 아쉬움

가람비 2008. 9. 8. 02:06

 

 

 

 

 

 

 

 

 

 

 

1995년경쯤

여름 휴가를 영흥도로 간적이 있었다.

애초에 영흥도를 목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 연안부두에 내려

가장 먼저 떠나는 배편이 어딘가를 보니 영흥도행이 가장 먼저 있어

아무 생각없이 올라탄 것이었다.

 

본래

그해의 여름휴가는 그렇게 가려고 작정했었다.

해마다 [당연히] 고향인 강원도로 휴가를 가다보니

그냥 보따리 둘러메고 훌쩍 떠나

발길 닿는 곳에 짐 풀고 여건에 맞춰 쉬고 오리라...생각한 것은 여러해 전부터였다. 

 

영흥도 선착장에는

여러 해수욕장에서 나온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가 골라서 탄 차는

지금은 지명을 잊었지만, 그해 처음 개장했다는 해수욕장에서 나온 차였다.

 

봉고차 운전사 아저씨가 소개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만 사시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밀물이면 바다에 들어가 놀고

썰물이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갯벌에 들어가 동죽 등 조개를 캐는 아주 단조로운

그러나 평소 동경하던 한적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며칠간 만끽했었다.

 

밤이면

바람 시원한 평상에 앉아

낮에 캐 온 조개를 안주삼아

할아버지와 기울이는 소주맛도 아주 일품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영흥도를 떠나올때

국이나 찌개 끓일때도 넣고

볶아먹기도 하라고

할머니께서 말린 조개를 한보따리 안겨주시기도 했었다.

 그동안 심심풀이 삼아 캔 조개를

할머니께서 일일이 까서 햇볕에 말려 두셨던 거였다.

 

 

그리고 10년 이상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 토요일

오후 4시에 영흥도를 향해 출발했다.

예정에 없었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월곶, 오이도, 시화방조제,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

영흥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30분경...

 

장경리 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보고

영흥도 수산물공판장에서 조개구이와 새우구이를 먹고

잘 닦인 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시화방조제를 지날 부렵부터 시작된 낙조는

장경리 해수욕장에서 절경을 이루었지만

한전의 발전소 건립과 맞바꾼 연륙교로 인해

영흥도는 더이상 섬도 아니었고

한적함도, 평화로움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오랜세월동안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내 추억의 아름다운 한 부분도 연륙교 건립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 셈이었다.

 

개발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른다.

또 잠깐 들러서 추억을 쌓은 도시민의 추억 따위는

늘 그곳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에 비할때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2년 봄

이 땅을 아주 떠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눈에 담기위해 찾아갔던

내소사, 채석강, 선운사 등지에서

절망에 가까운 실망감을 느낀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한때 좋았던 곳을 다시 찾아간다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꾸미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서 더 절절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아가

그 장소에 얽힌 이야기와 얼굴들을 다시 떠올리고 추억을 반추 하는 것은

찌든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 일이다.

 

그럴 장소가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어쨌든 슬픈 일이다.

 

 

 

 

 

 

'마음이 머무는 방 > 시간 흐르는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군 60주년 기념 뮤지컬 MINE  (0) 2008.09.17
즐겁고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0) 2008.09.12
사진연습...6.3 빌딩  (0) 2008.09.05
카메라...테스트  (0) 2008.09.01
새벽, 단상  (0) 2008.08.30